애플의 혁명가 빌 앳킨슨, 췌장암으로 별세…GUI 시대를 연 컴퓨터 천재

복잡한 명령어 입력의 시대를 마감하고 직관적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로 PC 혁명을 이끈 애플의 전설적 개발자 빌 앳킨슨이 영면했다. 그의 업적은 오늘날 모든 스마트기기의 토대가 되고 있다.

스티브 잡스(왼쪽)와 빌 앳킨슨.

스티브 잡스(왼쪽)와 빌 앳킨슨.

7일(현지시간)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애플 초창기 핵심 개발자이자 GUI 기술의 선구자인 빌 앳킨슨은 지난 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톨라 밸리에서 췌장암 투병 끝에 향년 72세로 생을 마감했다. 유족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작별 소식을 전하며 "그의 유산은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1951년 캘리포니아 로스 가토스 출신인 앳킨슨어는 워싱턴대학교 대학원 재학 시절인 1978년, 스티브 잡사의 직접적인 영입 제안으로 애플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개발팀 '맥팀'의 일원이 됐다. 당시 그의 사원번호는 단번에 '51번'이라는 의미 있는 숫자가 부여될 정도로 특별한 존재였다.

애플 재직 시절 그가 개발한 '퀵드로' 그래픽 시스템은 컴퓨터 역사의 판도를 바꾼 결정적 혁신이었다. 폴더, 파일, 프로그램 등을 시각적 아이콘으로 표현하는 이 기술 덕분에 일반 사용자도 전문 지식 없이 PC를 쉽게 조작할 수 있게 됐다.

특히 그가 창안한 '더블 클릭'과 '풀다운 메뉴' 개념은 현대 모든 운영체제에서 표준으로 채택됐으며, 최초의 대중형 그래픽 편집 프로그램인 '맥페인트'와 하이퍼미디어 시스템 '하이퍼카드' 역시 그의 손길에서 탄생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스마트폰 터치 인터페이스까지 모두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고 평가한다.

1990년 애플 퇴사 후 그는 제너럴 매직社를 공동 설립하며 모바일 컴퓨팅 미래를 예견했으나 상업적 성공에는 실패했다. 이후 자연 사진작가로 변신해 야생화 전문 사진집을 출간하는 등 다방면에서 창조력을 발휘했으며, 말년까지 테크 업계 리더들의 멘토 역할을 했다.

“양육비 안 주더니, 이제 딸까지?”… 전 남편 소송의 숨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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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혁명의 핵심, VSP One이 이끄는 스토리지 플랫폼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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